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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추석(秋夕) 놀이문화

 

     
    
추석의 놀이는 만월 아래에서 축제를 벌이고 먹고 마시고 놀면서 춤추었으며, 줄다리기, 씨름,강강수월래 등의 놀이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그러므로 고대에 만월을 갈망하고 숭상하던 시대에 이미 일년중에서 가장 달이 밝은 한가위는 우리 민족 최대의 축제로 여겨지게 되었고,후
          에 와서 의식화(儀式化)되어 명절로 제정(制定)을 보게 되어 오늘날까지 전승된 것이라 할 수 있다.한가위의 기원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에
          잘 나타나 있다."신라 제3대 유리왕(儒理王) 9년(서기 32년)에 왕이 6부를 정하고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내(部內)의 여자들을 거느
          리게 하여 두 패로 가른 뒤, 편을 짜서 7월 16일부터 날마다 6부의 뜰에 모여 길쌈을 하는데, 밤 늦게야 일을 파하고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
          이 많고 적음을 살펴 가지고 지는 편은 술과 밥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하고, 이에 온갖 유희가 일어나니 이것을 이를  가배(嘉俳)라 한
          다"고 하였고, 또 "이때 진 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기를, 회소회소(會蘇會蘇)라 하여 그 음조가 슬프고 아름다웠으므로 뒷
          날 사람이 그 소리로 인하여 노래를 지어 이름을 회소곡(會蘇曲)이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추석에 행해지는 세시풍속으로는 벌초(伐
          草), 성묘(省墓), 차례(茶禮), 소놀이, 거북놀이, 강강수월래, 원놀이, 가마싸움, 씨름,  반보기, 올게심니, 밭고랑 기기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
          에서 대표적인 몇 가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소놀이
           추석 날 차례를  마치고 난 뒤 알맞은 시간에 소 놀이는 진행된다. 먼저
           마을 사람들로 구 성된 농악대가 풍물을 울리면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상쇠의 선도에 따라 한바탕 신나 게 풍물을 울리며 어우러져
           놀다가  소 놀이가 시작된다. 두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그 위에 멍석을
           뒤집어 씌우며 뒷사람은 큰 새끼줄로 꼬리를 달고,앞 사람은 막대기 두
           개로 뿔을 만들어 소의 시늉을 한다.소를 끌고 농악대와 마을 사람들은
           그 마을에서 가장 부농 집이나 그 해에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사람의 집
           으로 찾아간다. 대문 앞에서 '소가 배가 고프고  구정물을 먹고 싶어 왔
           으니 달라'고 외치면 주인이 나와서 일행을 맞이한다.소를 앞세우고 일
           행은 앞마당으로 들어가 농악을 치고 노래하고 춤추고 놀면  주인 집에
           서는 술과  떡과 찬을 차려 대접한다. 마을 사람들은  한참 놀다가 다시
           소를 끌고 다른 집으로 향한다. 이렇게 여러 집을 찾아가 해가 질 때 까
           지 어울려  논다. 소 놀이를 할 때는 당년에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집 머
           슴을 상머슴으로 뽑아 소등에 태우고  마을을 돌며 시위하는 경우도 있
           다. 농사를 천하의 대본으로 여겨 온  농경 민족에게 있어 농사를 잘 지
           어 풍작을 거두게 하였다는 것은 큰 공이니 위로하고  포상하는 뜻에서
           소에 태우는 영광을 주는 것이다. 한번 상머슴으로 뽑히면 다음해 머슴
           새경을 정할 때 우대를 받게 된다.

         

      
원놀이·가마싸움
           옛날 서당 교육은 훈장을 초빙해서 가르치는 것이었다. 명절이 되면 훈
           장도 고향에 가서  차례 성묘를 하게 되므로 서당은  며칠을 쉬게  되고
           학동들은 자유롭게 놀 수가 있었다. 이럴 때에 학동들에 의해서 원놀이
           와 가마싸움이 있게 된다.원놀이란 학동들 중에서 공부를 많이 했고 재
           치 있는 사람을  원님으로 선발하고 나머지 학동들은 백성이 되어 원님
           께 소장을 내어 그 판결을 받는 놀이인데, 오늘날의 대학에서 행해지는
           모의 재판과 그 성격이 유사하다.이 때에 현명하고 지혜로운 원님은 사
           건을 잘 해결하지만 서투른 원님은  백성들의 놀림감이 된다.장차 과거
           에 등과해서  벼슬을 하고 백성을 다스려야 할 학동들의 놀이로서는 매
           우 적격이었다. 가마싸움도 학동들이 주가되어 행하여 졌다. 훈장이 없
           는 틈을 타서 가마를 만들어 이웃 마을  학동들과 또는 이웃  서당의 학
           동들끼리 대결을 하는 놀이이다.가마를 끌고 넓은 마당에 나아가 달음
           질 해서 가마끼리 부딪혀 부서지는 편이 지게 되는데 이긴 편에서 당년
           에 등과가 나온다고 한 다.

      
      
반보기
           추석이 지난 다음 서로 만나고 싶은 사람들끼리 일자와 장소를 미리 정
           하고 만나는 것을 반보기라 한다. 옛날에 시집간 여자들은 마음대로 친
           정  나들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모녀 사이에 중간 지점을  정해서
           서로 즐기는 음식을 장만하여 만나 한나절 동안 그 동안 나누지 못했던
           회포를 푸는 것이  반보기인 것이다. 또 한 마을의 여인들이  이웃 마을
           의 여인들과 경치 좋은곳에 집단으로 모여 우정을 두터이 하며  하루를
           즐기는 수도 있다. 이 때에 각 마을의 소녀들도  단장하고  참여하게 되
           므로 자연스럽게 며느리 감을  선정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반보기란
           중로 (中路)에서 상봉했으므로  회포를 다 풀지 못하고  반만  풀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소 싸움
           소 싸움은 넓고  튼튼한  우리를 만들고 황소의  고삐를 풀어 두 마리를
           넣어두면  싸움이  시작된다. 서로 노려보다가  앞발로  땅을 긁어 흙을
           파헤치면 성낸 표시가 되고, 서로  머리를 대고 비비고  뿔로 받고 밀치
           고 한다. 뒤로 물러섰다가 부닥치는 소리가  "쿵! " 하고 크게 나서 힘과
           힘의 대결임을 알 수가 있어  장관을 이룬다. 힘과 끈기와  투지의 대결
           로 한없이 밀리거나 뿔로 심하게 받혀서 부상을 하면 도망치는데, 하나
           가 도망하면  승부가 난다. 소 싸움도  좋은 구경거리가 되는 한편 내기
           를 하는 일도 있다.

                 
                          

 
    
올게심니
      추석을 전후해서 잘 익은 벼,수수, 조 등 곡식의 이삭을 한 줌       베어다가 묶어 기둥 이나 대문 위에 걸어 두는데 이것을 올게
      심니라고 한다.올게심니를 할 때에는 주찬(酒饌)을 차려 이웃
      을 청해서 주연을 베푸는 수도 있다. 올게심니한 곡식은 다음
      해에 씨로 쓰거나 떡을 해서 사 당에 천신하거나 터주에 올렸
      다가 먹는다. 올게심니를 하는 것은 다음해에 풍년이 들게 해
      달라 는 기원의 뜻이다. 밭고랑 기기:전라남도 진도에서는 8
      월 14일 저녁에 아이들이 밭에 가서 발가벗고 자기 연령 수대
      로 밭고랑을 긴다.이 때에 음식을 마련해서 밭둑에 놓고 하는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그 아 이는 몸에  부스럼이 나지 않고
      밭농사도 잘된다는 것이다.
      
    
강강술래
     
남해안 일대에 전승되어 오는 민속놀이로 주로 팔월 한 가위
      에 여성들이 노는 놀이인데 , 여성놀이 중 가장  정 서적이며
      율동적인 놀이이다. 고대 부족사회의 공동축제 등과 같은 모
      임 때 서로 손과 손을  맞잡고 뛰어 놀던  단순한 형태의 춤이
      강강술래의 기원으로 추측된다. 수십 명의  부녀자들이 손을
      맞잡고  둥그런 원을 지어 무리를 이룬다. 이 들 중에서 목청
      이 빼어난 사람이 앞 소리를 메기면 나머지 사람들은 뒷소리
      를 받으면서 춤을 춘다.노래는 처음에 느린 가락의 진양조로
      시작하다가 점점 빨라져 춤 동작도 여기에 따라 변화한다.이
      렇게 노래가락에 맞추어 여러 형태로  원을 변형시키며 고사
      리꺾기, 덕석몰이, 청어엮기, 문열기, 기와밟기, 가마둥둥, 닭
      살 이, 남생이 놀이 등 재미있는 춤놀이를 벌이는 것이다.
    
    
씨름
     
우리나라 전통적인 남자 운동경기의 하나로 한문으로는 각
      희, 각력, 각저라고 부릅니다. 넓은 마당에서 허리와 다리에
      띠나 삽바를 두른 두 장정이 마주 꿇어 앉아 각기 한 손으로
      는 다리의 띠를 잡은 다음 심판관의 호령에 의해  동시에 일
      어나 먼저 상대방을 넘어뜨림으로써 승부를  결정하는 경기
      입니다. 만주 퉁구에 벽화로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고구려 때에도 있었음을 알 수 있고, 또 고려사에 의하면 충
      혜왕은 씨름을 즐겨 동왕 5년(1334) 2월과  7월에 이를 관람
      한 기록이 나타난 것으로 보아 고려에서도 성행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후 경향  각지에서 남자들의 놀이로 단오, 백
      중날, 한가위, 농한기 등에 행해졌으며 특히  단오절에는 여
      자들의 그네뛰기와 함께 연중행사로 성대히 거행 되었습니
      다. 씨름은 남성을 위한 체육경기적 민중오락이며, 가장 서
      민적인  남성놀이입니다. 4세기 말의  고구려 <씨름무덤>의
      내용으로 미루어 우리는 일찍부터 이를 즐겨온 것으로 생각
      됩니다. 우리 나라 씨름의 뿌리는 몽골로서  중국을 거쳐 들
      어왔으며 일본 씨름 (스모우)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씨름을
      하는 방식은 샅바를 매고  한쪽 무릎을 꿇어 서로  상대방의
      허리와 다리를  잡아 쥔 다음 동시에 일어나서  힘과 손발의
      기술을 발휘하여 먼저 상대방을 넘어뜨리면 이기면 됩니다.
      보통 오른손으로 상대방의 허리를 쥐고 왼손으로 상대방의
      샅바를 잡는 데 이것을  바른 씨름이라고 하고 손잡는 것이
      반대인 것을 왼씨름이라고 합니다.경기의 기술로는 안 걸이
      배치기 발걸이 둘러치기 등 여러가지가 있으며, 씨름판이라
      하여 주로 백사장의  원형 판에서  이루어집니다. 또한 우승
      자에게 황소를 상으로 주는 것이 관례였습니다.